YKK - Little Parts. Big Difference.

COMPANY

연혁

YKK HISTORY

1934 ~ 현재
2019
  • 2019.07

    YKK FASTENERS PRODUCTS판매(한국)(주)와의 통합
    Textile and Plastic Parts & Buttons 판매개시

2008
  • 2008.12

    매출 1억 달러 달성

  • 2008.01

    YKK SNAP FASTENERS KOREA 주식회사와의 통합
    Snap & Button 판매개시

2003~2000
  • 2003.01

    신공장 B동 완공

  • 2002.01

    YKK한국주식회사 증자 1,000만 달러(자본금 52억 2,000만원)

  • 2000.01

    신공장 A동 완공

1999~1984
  • 1999.12

    2,500만 달러 (자본금 35억 9,700만원)

  • 1999.06

    YKK SEOUL과의 합병 사명변경-YKK한국주식회사

  • 1984.12

    제 1차 증축, 증설

1977
  • 1977.12

    평택시에 공장건설

  • 1977.10

    평택시에 토지구입

  • 1977.09

    YKK 한국㈜ 설립 (30번째 해외진출국)

1975~1963
  • 1975

    쿠마모토현 야츠시로시에 큐슈 공장 가동

  • 1974

    미야기현 시다군 삼봉기쵸에 토호쿠 공장 가동

  • 1972

    현 아야우타군 우타즈쵸에 시코쿠 공장 가동

  • 1963

    본사를 도쿄도 치요다구 칸다이즈미쵸(현재지)로 이전

1950’s
수동화-자동화로의 전환

당시 동조업자들은 기계화하는 것보다도 일본인의 손재주를 이용해 싸게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구도 찬성을 하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혼자 통산성(한국:산업자원부)수입 허가를 받고 일본에 자동 지퍼기계를 처음으로 수입하게 되었다. 체인머신의 형개발이나 자동 슬라이더 제작기의 자사개발을 성공시켜 일본에서는 압도적인 지위가 되고, 세계에서도 주문이 쇄도하게 되었다. YKK는 일본의 지퍼 사업에 혁신을 가져왔으며, 생산과정 제품관리까지 생산방식 변경 후, 장애와 고장을 제거하게 되었으며 1959년 뉴질랜드에 제1호 외현 지법인(패스너 제조판매)을 설립하게 되었다.

1940’s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5년 8월 요시다 타다오는 공습으로 타버린 동경공장의 기계를 가지고 고향 토야마현 우오즈에서 홀로 사업을 재개했다. 당시 패스너 생산은 전부 수작업이었고 이빨(지퍼에 맞물리는 부분)을 양손 끝으로 잡아, 금속제 꼬치형으로 집은 천테이프에 하나하나 심어 가는, 수동프레스로 생산을 하였다. 작업은 1조에 13명으로, 그 중 12명은 심는 작업을 하는 여자 작업원이며, 나머지 1명은 남자로 프레스 작업을 하였다.

이 에키센프레스 작업은 하루 종일 12명에게 내몰리는 중노동으로서, 먹을 것이 없었던 빈곤한 시대에, 매일 쌀을 특별히 2,3홉 지급할 정도 였다. 당시 생산된 지퍼는 만들면 만드는 대로 팔려, 1947년에는 수출 목적으로 동경에 영업소를 설립하게 되었지만, 그 해 7월 찾아온 미국 바이어를 통해 알게 된 미국제 패스너는 YKK의 패스너보다 월등히 싸고 품질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창립자 요시다 타다오에게 큰 도전이 되었고, YKK 패스너를 수출해도 승부 할 수 있는 제품으로 생산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으며 자동화 생산의 시기를 앞당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30’s
1934년 YKK 설립

1928년 상경한 요시다 타다오는 도쿄 니혼바시에 있는 중국산 도자기 무역을 하고 있는 후루야 상점에(후일 요시다 공업의 발상지) 취직을 하였고, 1931년 만주사변에 따라 경영이 곤란을 겪었으며, 1933년 9월 에는 오사카의 패스너 브랜드(SSS)의 도움으로 패스너 판매를 시작 하게 되었다. 하지만 후루야 상점은 도산하게 되었고, 요시다 타다오는 후루야 상점의 패스너 재고를 가지고 패스너의 가공, 판매를 하는 회사 (산에스상회)를 같은 곳에 1934년 1월 설립하였다. 이것이 요시다 타다 오와 패스너의 만남이었다. 설립 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장하던 산에스상회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장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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